2018년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영화 「변산」은 박정민, 김고은, 장항선 등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한 감성 드라마입니다. 래퍼로 성공을 꿈꾸는 청춘과 그를 둘러싼 고향 사람들, 얽혀 있는 과거와 화해의 이야기까지, 웃음과 눈물이 함께하는 이 영화는 많은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영화 「변산」의 주요 요소와 감상평을 중심으로 이 영화가 가진 매력을 심층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래퍼 청춘의 현실과 꿈
영화의 주인공 학수(박정민 분)는 언더그라운드 래퍼로 활동하며 메이저 데뷔를 꿈꾸는 청춘입니다. 서울에서 힘겹게 살아가며 랩 가사로 자신의 분노와 상처를 쏟아내는 그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탈락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의 병환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고향인 변산으로 내려갑니다. 이 설정만 보아도 영화는 단순한 ‘청춘 성장기’가 아닌,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방황하는 젊은 세대의 심리를 진지하게 조명합니다.
박정민은 실제로 이 영화에서 랩을 직접 소화하며 뛰어난 캐릭터 몰입을 보여줍니다. 랩은 단순한 장르 요소가 아니라 주인공의 감정을 대변하는 중요한 장치로 기능하며, 인생의 밑바닥을 헤매는 학수의 처절한 내면을 보여줍니다. 특히 그의 가사에는 고향과 아버지에 대한 분노, 과거의 상처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관객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옵니다.
또한 이 영화는 단순히 성공을 향한 ‘도전’보다는,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진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립니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후엔 관객 각자의 삶도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젊은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소재와 감정선이 잘 구성된 이 작품은, 청춘의 단면을 깊이 있게 표현한 영화로 기억됩니다.
고향과 가족: 돌아갈 수 없는 곳, 돌아가야 할 이유
고향 변산으로 내려온 학수는 불편한 감정이 가득합니다. 특히 아버지(장항선 분)와의 관계는 얼어붙은 빙판처럼 차갑습니다. 어릴 적 가정의 해체, 어머니의 부재, 그리고 아버지의 무관심은 학수에게 깊은 상처로 남아 있으며, 그는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장소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고향에 다시 발을 들이면서, 그는 그곳에 남겨진 감정의 잔해와 마주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고향이라는 공간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감정의 무대로 활용합니다. 낡은 골목, 오래된 친구들, 익숙한 방언과 풍경은 학수의 거칠었던 표정을 조금씩 누그러뜨립니다. 김고은이 연기한 선미는 학수의 고등학교 동창으로, 학수가 잊고 지냈던 ‘순수함’과 ‘애정’을 다시 느끼게 해주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학수를 변산에 다시 뿌리내리게 만드는 매개체이자, 변화의 계기를 제공하는 존재입니다.
특히 아버지와의 관계 변화는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감정선입니다. 척박했던 부자의 관계는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조금씩 따뜻해집니다. 학수는 아버지의 병과 그가 평생 숨겨왔던 사연을 알게 되며, 원망보다는 연민과 이해의 감정을 갖게 됩니다. 이 장면들은 눈물 없이 보기 힘든 명장면으로, 많은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고향은 때로는 우리가 도망치고 싶은 장소지만, 동시에 다시 돌아가야만 치유받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영화 「변산」은 그런 의미에서, 고향과 가족이라는 보편적이지만 묵직한 주제를 진솔하게 풀어낸 수작입니다.
유쾌함과 감동이 공존하는 이준익 감독의 연출력
「변산」은 ‘동주’, ‘사도’ 같은 역사극으로 유명한 이준익 감독의 또 다른 도전이자 실험입니다. 그가 이번엔 현대극, 그것도 래퍼 청춘과 고향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기존의 작품과는 결이 다릅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사람’에 대한 깊은 애정과 통찰이 녹아있습니다.
이 영화는 어두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습니다. 지역 주민들과의 에피소드, 고향 친구들과의 웃지 못할 해프닝, 사투리의 생생함 등은 웃음을 유발하며 영화의 무게감을 적절히 덜어줍니다. 이준익 감독 특유의 인간적인 시선은 영화 전체를 따뜻하게 감싸며, 관객이 이야기 속으로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만듭니다.
또한 연출의 강점은 ‘캐릭터 간의 관계성’을 섬세하게 그려낸 점입니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조연 캐릭터 하나하나가 살아있고, 그들의 사연 또한 영화에 깊이를 더해줍니다. 장항선, 김고은, 신현빈 등 배우들의 연기도 모두 안정적이며,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소화해 영화의 몰입도를 높입니다.
음악의 사용 역시 이 영화의 중요한 미덕입니다. 박정민이 직접 소화한 랩은 물론, 배경음악 역시 영화의 감정선에 깊이를 더하며 장면 장면마다 감정을 극대화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흐르는 음악과 함께 학수가 무대 위에 서는 순간은, 관객의 가슴을 울리는 명장면으로 오래 기억됩니다.
영화 「변산」은 단순한 청춘 영화가 아닙니다. 꿈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의 불안함, 가족과 고향에 대한 복잡한 감정, 그리고 결국엔 삶과 화해해 나가는 과정을 진솔하게 그려낸 감동적인 작품입니다. 박정민과 김고은의 뛰어난 연기, 이준익 감독 특유의 따뜻한 시선이 더해져 많은 여운을 남기는 영화로, 아직 관람하지 않으셨다면 꼭 한 번 감상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