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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체육계 성폭력, 청소년 연대, 독립영화)

by happyracky 2025. 5. 20.

2023년 개봉한 한제이 감독의 영화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는 체육계 성폭력과 권력형 승부조작을 고발하는 한국 독립영화입니다. 단순히 스포츠 영화나 청소년 성장물로 분류하기엔 아까운, 이 작품은 현실의 폭력에 맞선 청소년들의 용기와 연대, 침묵을 강요당한 이들이 목소리를 내기까지의 고통과 결단을 날것 그대로 담아냅니다. 하영, 나예지, 주영이라는 세 여성 청소년 캐릭터를 중심으로, 이 영화는 ‘우리가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선언’을 조용하지만 강하게 외칩니다.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

하영, 태권도 국가대표를 꿈꾸는 소녀의 침묵과 외침

하영은 어린 시절부터 태권도를 인생의 전부로 삼아온 고등학생입니다. 전국 대회를 앞둔 유망주이자 국가대표 선발을 목표로 매일 구슬땀을 흘리는 그녀는, 운동 외에는 다른 세계를 알지 못한 채 자라왔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믿고 의지해온 코치로부터의 성추행 피해는 그녀의 삶을 완전히 뒤흔듭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일회성의 문제가 아니라, 체육계 내부의 구조적 침묵과 권력 남용, 승부조작과 강요된 복종,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나도 오랫동안 묵인되어 온 폭력’의 실체를 드러냅니다. 하영은 그 사실을 외면할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상태에서 점점 무너져 갑니다.

그러나 영화는 하영을 ‘피해자’로만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피해자로서의 침묵을 벗고 말하는 사람으로 그립니다. 하영은 겁에 질려 있지만, 스스로의 침묵이 또 다른 피해를 낳을 수 있음을 인식하고 결국 행동에 나섭니다. 그녀는 완벽한 인물이 아니고, 그저 ‘말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용기를 내는 소녀’입니다. 박수연 배우는 이 복잡한 내면을 절제되면서도 깊이 있게 연기해내며, 관객에게 직접적인 정서적 충격을 안깁니다.

나예지와 주영, 서로 다른 현실에서 만난 연대의 힘

영화의 전개는 하영 혼자서 이 문제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두 인물 나예지와 주영의 등장으로 본격화됩니다. 이들은 모두 태권도장을 중심으로 얽힌 현실 속에서 서로 다른 위치에 있지만, 결국 같은 시스템 안에서 침묵과 모순을 목격해온 인물들입니다.

나예지는 대회 승부조작의 이면을 알고 있는 학생입니다. 불공정한 선발과, 연습만큼 실력보다는 ‘누굴 아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현실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껴온 인물입니다. 그녀는 하영의 피해를 눈치채지만, 처음엔 선뜻 다가가지 못합니다. 하지만 진실을 외면할 수 없는 순간, 예지는 자신의 ‘비겁했던 침묵’을 고백하며 하영 곁에 서기로 결심합니다.

주영은 외부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건의 전말을 파고드는 인물로서 중심에 서게 됩니다. 그는 훈련장 밖에서 더 큰 구조의 문제를 목격하고, 아이들에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공간과 용기를 제공합니다. 주영은 나예지와 하영이 서로를 신뢰할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하며, 영화 속 '연대의 상징'으로 기능합니다.

한제이 감독의 현실 직시와 메시지: 왜 우리는 이 영화를 봐야 하는가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는 제목부터 많은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상적인 정의나 완벽한 세상을 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할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한제이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영웅 서사’가 아닌 평범한 청소년의 용기 있는 현실 저항을 다룹니다. 영화는 과장된 장치 없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조용한 카메라, 절제된 대사, 배우들의 눈빛과 표정만으로도 영화는 깊은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상업영화에서는 쉽게 다룰 수 없는 주제를, 독립영화의 언어로 정직하게 표현해낸 점이 이 작품의 진짜 힘입니다.

또한, 영화는 단지 ‘고발’에 그치지 않습니다. 피해자 중심의 시선을 유지하면서도,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려는 움직임, 연대와 진실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한제이 감독은 특히 여성 청소년들이 처한 이중적 압박과 선택의 무게를 깊이 있게 다루며, 이 사회가 그들에게 부여한 부당한 침묵의 요구를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결론: 우리가 마주해야 할 현실,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야 할 변화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는 단순한 영화 그 이상입니다. 이 작품은 우리가 외면해왔던 현실을 조용히, 그러나 깊이 있는 방식으로 마주하게 합니다. 하영, 나예지, 주영 세 인물은 더 이상 허구 속 캐릭터가 아닌, 이 시대의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실제 현실의 얼굴입니다.

영화는 말합니다. 우리는 천국에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목소리를 내고 사랑할 수 있다면, 그곳도 우리에게 하나의 천국이 될 수 있다고. 청소년과 체육계, 여성 인권, 그리고 용기 있는 연대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반드시 이 영화를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이 영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현실이고, 하나의 선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