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개봉한 홍의정 감독의 첫 장편 영화 ‘소리도 없이’는 국내 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작품이다. 유아인과 유재명이라는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하며, 말수 적은 두 남자의 침묵과 행동만으로 전개되는 범죄극의 새로운 형태를 선보였다. 이 영화는 유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클리셰를 피하고, 조용하지만 강한 여운을 남긴다.
낮에는 계란 배달, 밤에는 시체 처리 - 이중생활의 일상
‘소리도 없이’의 주인공 태인(유아인 분)과 창복(유재명 분)은 겉으로는 평범한 시골 남성이다. 낮에는 계란을 배달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밤에는 범죄 조직의 의뢰를 받아 시체를 처리하는 일을 해온다. 그들의 삶은 범죄와 일상이 절묘하게 섞여 있으며, 오히려 매우 근면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인물로 그려진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대사 없이도 영화의 대부분을 끌고 간다는 점이다. 특히 태인은 말을 하지 않고 표정과 행동으로만 감정을 드러낸다. 유아인은 이 무언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관객들에게 묵직한 인상을 남긴다.
이러한 연출은 감독의 의도적인 설정으로, ‘말이 없는 삶’과 ‘보이지 않는 범죄’를 동시에 시각화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일상과 범죄의 경계가 모호한 이들의 삶은 관객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윤리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계획에 없던 유괴범 - 아이의 등장이 바꾼 세계
영화의 본격적인 전환점은 의뢰인이 맡긴 유괴된 아이 초희(문승아 분)가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아이를 며칠만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은 태인과 창복은 별 생각 없이 이를 수락하지만, 곧 의뢰인은 연락이 두절되고, 두 남자는 원치 않게 유괴범이 된다.
이때부터 영화는 묘한 감정선을 따라 전개된다. 범죄자지만 아이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오히려 보호자처럼 돌보는 태인의 모습은 아이러니함을 자아낸다. 그는 처음엔 아이와의 접촉을 꺼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에게 점점 마음을 열게 된다.
이 감정선은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다. 죄를 짓는 사람도 인간이며, 그 안에도 선함이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유아인의 절제된 연기와 영화의 침묵 속에 더욱 강렬하게 각인된다. 대사 없이도 관객은 태인의 혼란과 고뇌를 느끼게 된다.
유아인과 유재명의 시너지, 그리고 감독의 연출력
‘소리도 없이’는 무엇보다 연기와 연출의 힘으로 완성된 영화다. 유아인은 기존의 강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내면의 감정을 절제된 표정으로 표현하는데 성공했고, 유재명은 조력자이자 현실적인 인물로 영화의 균형을 잡아준다.
홍의정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연출력을 보여줬다. 색감, 구도, 사운드 디자인까지 섬세하게 계산된 연출은 영화의 몰입도를 극대화한다. 특히 음악을 최소화하고, 자연음과 침묵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운드 미학은 제목 그대로 ‘소리도 없이’ 관객의 감정을 자극한다.
영화는 단순한 범죄 영화가 아니라 인간 심리를 다루는 정서적 느와르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복합적인 장르를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낸 것은 신인 감독으로서도 놀라운 성취라 할 수 있다.
‘소리도 없이’는 자극적인 장면이나 화려한 액션 없이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드문 영화다. 유아인과 유재명의 강렬한 연기, 홍의정 감독의 과감한 연출, 그리고 비주류적인 스토리가 어우러져 독창적인 작품으로 탄생했다.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진짜 ‘소리 없는 울림’을 느껴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추천한다.